▲ 경기장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그림이죠?

때로는 똑같이 옷을 맞춰 입고, 응원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그들은 늘 지켜보고 목청 높여 응원하고 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된 화순에서 ‘제2의 선수’ 학부모를 만나보았다.
글 · 사진 배지원 기자

선수와 엄마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정훈아~ 하고 부르면 박정훈과 박정훈의 엄마가 함께 돌아보고, 세웅아~ 하고 부르면 박세웅과 박세웅의 엄마가 함께 달려온다. 통칭 박정훈으로 불리는 박정훈의 엄마 최경옥 씨와 박세웅으로 불리고 있는 박세웅의 엄마 김미화 씨와 함께 유쾌한 엄마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진광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정훈과 박세웅의 인연은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동네에 살고, 아이들이 같은 나이다 보니 엄마들도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그렇게 박정훈과 박세웅은 나란히 봉평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은 한병우 감독의 권유로 박정훈이 먼저 배드민턴부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세웅도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됐다.
“세웅이가 100m달리기를 못했어요.”
박세웅의 엄마 김미화 씨는 행여나 덩치가 좋은 아들이 씨름부에 스카우트되는 것이 걱정스러워 조마조마하던 찰나에 확실하게 다이어트해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운동을 시키고자 마음먹는다. 그리고 맏아들 세웅의 영향으로 동생 창일(진광중1)과 상훈(봉평초6)까지 배드민턴 선수를 하게 된다. 아들 셋을 키우는 것도 힘든데, 아들 셋 다 운동을 하면서 배드민턴 가족이 됐다.

▲ 정훈이랑 엄마랑

운동하는 것에 적극적이던 박세웅의 집과는 반대로 박정훈은 초등학교 시절 몇 번의 시련(?)을 겪는다.
“운동을 못하게 하려고 몇 달 동안 피아노 학원을 보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 집 아들 운동 너무 잘한다고, 그냥 펄펄 난다고 볼 때마다 그러는 거예요. 전 분명히 피아노학원을 보냈는데.......(웃음).”

박정훈의 엄마 최경옥 씨는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늘 부상과 성적을 뗄 수 없음을 알기에 정훈이 운동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렸다. 하지만 엄마가 반대할수록 박정훈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박정훈은 진광중에 입학을 하고 박세웅과 함께 코트에서 펄펄 날기 시작했다.

봉평초에서 진광중으로 이어진 박세웅과 박정훈 왼손, 오른손 황금 콤비는 진광중에 잊지 못할 승리를 여러 번 안겼다. 진광고에 입학 후 박세웅이 전봉찬(진광고3)과 함께 복식을 뛰면서 지금은 둘이 함께 코트에서 뛰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황금 콤비는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다시 만나도 척척 호흡을 맞출 것이다.

▲ 최경옥씨와 김미화씨

운동선수의 엄마로 산다는 것
“경기장에 올 때마다 일 년씩 늙어서 돌아가요(웃음).”
경기장에서 주름이 하나씩 생겨서 돌아간다 할지언정 두 어머니 다 아들의 경기 일정을 줄줄 꿰차고 있다. 경기장에서 뛰는 아들을 보면 자랑스러운 마음과 함께 못 지내기에 애잔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운동선수로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이 아닐까? 박세웅과 박정훈 역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배드민턴에만 매달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집에서 보는 것보다 경기장에서 보는 날이 많아진다.
“중학교 때는 정훈이가 원주에 갈 때마다 펑펑 울었는데, 신기하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깐 눈물이 딱 멈추더라고요. 오히려 집에 오면 뭘 해줘야 하나 고민되고(웃음)”
웃으면 말을 했지만 최경옥 씨는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아들 생각에 에어컨을 틀 때마저 미안한 마음을 갖는 어쩔 수 없는 아들바보 엄마였다. 박정훈이 중학교 때 발목부상을 당했을 때는 6개월간을 답십리에 있는 병원까지 데리고 다니며 치료를 받게 했다. 박정훈의 발목치료에서 의학의 힘도 컸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정성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운동은 아이들이 하지만 부모도 사실 제2의 선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성적이 좋으면 협찬으로 받는 물품도 있기에 부모의 부담이 덜 하다. 하지만 박세웅 형제처럼 아들 셋이 한꺼번에 운동을 한다고 하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세웅이랑 엄마랑

“세웅이가 대표팀에 가는 게 정말 도움이 많이 돼요. 그리고 아이들끼리도 스스로 많이 하려고 노력하구요.”
김미화씨는 욕심 없이 운동을 시켰던 아들이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 아들 셋을 앉혀두고 “모두가 대학을 갈 필요는 없다. 가고 싶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엄마한테 와서 말해라“라고 할 정도로 무조건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과 그게 맞는 교육을 하려는 김미화씨의 교육 철학은 확고했다. 그랬기에 세웅, 창일, 상훈 삼 형제는 배드민턴을 하는 것에 있어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고, 즐거워한다.

이번 학교대항전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박세웅과 박정훈은 주니어대표팀 합숙에 들어간다. 더운 날씨에 지치고 힘들지만 한 달여 힘든 합숙을 끝내고 나면 그만큼 더 성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두 선수 다 의젓하게 부모님을 안심시킨다.

“세웅아, 이렇게 시작을 했으니 목표한 것을 꼭 이루고, 친구들도 배려하고 책도 많이 읽어서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위해서 뛰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닭칼국수랑 떡볶이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게.”
“정훈아, 아프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네가 욕심을 내서 했으면 좋겠다. 김치찌개랑 두루치기 해놓고 기다릴게.”

한 달여 주니어대표팀 합숙이 끝나야 볼 수 있는 아들에게 남기는 두 어머니의 응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어릴 때부터 지켜보고 성장하는 것을 다 봐왔기에 모두 내 아들 같다고 말하는 두 어머니를 지켜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경기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학부모의 마음은 하나다. 내 아들딸이 좋은 성적을 내고 승승장구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무엇보다 코트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코트에서 땀 흘리고 있는 모든 선수와 늘 그들과 함께 뛰고 있는 제2의 선수 학부모들에게 힘찬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박세웅
1995. 11. 06
봉평초 - 진광중 - 진광고

박정훈
1995. 05. 05
봉평초 - 진광중 - 진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