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데일리
최종편집 : 2022.9.29 목 09:35
3(이전)
셔틀콕 천사 - 애틀랜타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선수
배드민턴데일리  |  webmaster@badmintondaily.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4.07.27  22:24: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애틀랜타 올림픽 준결승

깨어보니 새벽 3시. 수현은 1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채 두 시간 남짓밖에 자지 못했다. 1996년 7월 30일. 수지 수산티와의 준결승을 앞두고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버릇대로 새벽기도를 올린다. 흥분으로 기도하는 손에 땀이 차고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수산티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않고는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수현의 최종 목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수현이 ‘수산티 콤플렉스’라는 한계를 뛰어넘느냐, 아니면 영원히 수산티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남겨두느냐 하는 마지막 승부수가 될 것이었다. 수현은 당시 랭킹 1위였던 중국의 예자오링과 결승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8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생각 외로 쉬운 상대인 미아 아우디나가 결승에 올랐다. 따라서 수현과 수산티 중의 승자가 올림픽의 월계관을 쓸 가능성이 높았다. 수현은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한시라도 빨리 수산티와의 준결승이 지나가기를 하루에도 수백번씩 빌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수산티와의 준결승전을 치르는 날이다. 수현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서 준결승전이 열리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수산티보다 먼저 와서 여유있는 모습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수산티가 보인다. 선수를 뺏겼다는 생각에 일단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여유를 갖고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수현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감독님도 수현의 긴장을 풀어주려 애쓰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서서히 일고 있는 승리에 대한 열의와 패기는 수현을 충분히 흥분시키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한 시간여 남짓 수현과 수산티는 이미 시합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건너편의 수산티를 간간이 훔쳐보며 몸을 푼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상대를 의식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수산티가 의외로 몸이 좀 무거워 보인다. 그런 탓일까? 수현에게서 자신감이 더 굳어갔다. 시합이 시작되기 전 언제나처럼 기도를 올리는 수현. 그러나 이번 기도는 더 무게가 실리고 절실하다.


수산티 콤플렉스여 안녕!

경기가 시작됐다. 언제나처럼 몸이 빨리 풀리지 않는 수산티에게 수현은 공격적인 자세로 공략해 들어간다. 점수를 시소처럼 주고받으며 접전을 펼치다 경기의 호흡을 수현쪽으로 완전히 돌려놓는다. 예상대로 수현이 첫 게임을 11대 9로 따냈다. 첫 게임의 승리는 기분이 좋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몸이 늦게 풀리면서도 체력과 지구력이 강한 수산티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시합은 이제부터다. 지금까지 수현은 첫 게임을 이기고도 나머지를 내리 져 수산티의 두꺼운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벽을 무너뜨리고 수현의 오랜 심리적 장벽을 뛰어넘어야한다.
비디오로 수백번도 더 보았던 수산티의 경기 장면을 떠올린다. 그녀를 공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빠르고 공격적인 플레이뿐이다. 이날을 위해 남자 선수들과 수없이 연습을 해왔다. 조금만 고삐를 늦추면 당장 추격해 들어오는 수산티는 공격할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표범과 같은 선수다. 지난 4년 동안 오로지 수산티만을 생각하면서 흘려 온 땀의 결과를 한순간에 쏟아내야 한다. 수현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고 수천번도 더 다짐해 온 자기암시를 건다. ‘침착해야해. 체력의 균현을 깨지 않아야 한다구. 절대로 서두르지 말자. 내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틀림없이 수산티를 이길 수 있어.’
다시 두 번째 경기가 이어진다. 세 번째 경기까지 가면 틀림없이 체력적으로 열세인 수현이 몰릴 것이 뻔하기에 이번 경기에서 필사적으로 이겨야한다. 과감히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지는 드롭샷과 강스매시를 적절히 섞어 자신감 넘치는 공격을 펼친다. 조금의 떨림이나 주저도 없이. 공격이 잦아지고 랠리도 점차 빨라진다. 실력이 엇비슷한 지루한 접전은 수현의 체력에 한계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라켓을 들 힘도, 다리를 옮길 여력도 없다. 탈진해서 토할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다. ‘조금만 더 참자. 침착해야만 해. 수산티도 사람이야. 내가 힘들면 수산티도 힘들고, 내가 쓰러지면 수산티도 쓰러진다.’
수산티도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라 강한 스트로크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서로 비슷하게 지쳤다면 이제는 누가 포기하느냐의 문제다. 수현이 기선을 제압해야한다. 끈질기게 실수를 유도한다. 거짓말처럼 수산티는 수현의 예상대로 하나둘씩 실수를 하기 시작한다. 수산티도 결국 수현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녀가 완연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8대8, 9대8 접전의 계속되고 마지막 한 점. 기도하는 마음으로 과감히 강스매시를 쳤다. 네트를 넘어 직선을 그리며 과감하게 떨어지는 공. 11대8. 세트 스코어 2대0. 드디어 수현이 이겼다. 수산티를 꺾고, 정말로 이긴 것이다. 열다섯 살 때 첫 만남 이후로 10여년에 걸친 실로 오랜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이다. 수산티에게 이겼다기 보다는 수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희열이 앞선다. 벅찬 감회와 만족감이 커져만 간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코트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애틀랜타의 하늘 아래, 관중들의 폭발할 것 같은 함성 속에서….

< 저작권자 © 배드민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배드민턴데일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스포츠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아01662  |  등록일자 :2011.06.15.  |  발행일자 : 2011.02.11.  |  제호 : 배드민턴데일리  |  발행인·편집인 : 김기원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85길 46, 405호(서계동,서계빌딩)  |  대표전화 : 02)716-0020  |  팩스 : 02)716-00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기원
Copyright 2011 배드민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badmintondail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