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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의 여왕보다는 셔틀콕의 천사로 남고 싶어요”…방수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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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0.23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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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어쩌면 제게는 운명이었나 봐요”
아버지 방일수 씨의 회갑에 맞춰 지난 4월 말 한국에 온 방수현 선수. 팬들은 아직 그녀를 잊지 않고 있었다. 어려울 줄 알았던 방수현 선수와의 만남이 대교여자배드민턴팀 서명원 감독의 주선으로 단번에 이루어졌다. 방수현 선수를 만나기 위해 한국체육대학교를 찾아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방수현 선수에 대한 스크랩 기사를 읽고 있었다. 유난히 ‘셔틀콕의 천사’란 말이 눈에 많이 띄었다. 천사,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천사로 불려지는 기분은 어떨까?’ 꼭 물어보리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
한 여자가 좁은 통로를 달리고 있었다. 통로 끝에 바늘구멍만한 빛이 보이자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내달렸다. 갑자기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철조망이 있어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여자는 철조망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철조망을 넘어서자 바늘구멍은 점점 커지더니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꿈이었다. 반나절의 꿈 속에서 세상살이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올림픽사상 대한민국 최초 배드민턴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그녀는 ‘포기’와 ‘좌절’이라는 철조망을 어렵게 넘었다. 그러나 네트를 넘어서는 셔틀콕을 욕망이라 부른다면 그녀의 욕망은 5.5g 셔틀콕만큼 가볍다.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방수현 선수는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선수생활 내내 수많은 선행을 실천하며 셔틀콕의 천사로 불리웠던 방수현 선수는 부귀와 명성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는 뒷모습까지 아름다웠다.
아시안게임에다 전영오픈, 올림픽까지 석권한 세계적인 선수를 만난다는 설레임에다 원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서툴렀던 나는 체육관 앞에서 잠깐 머뭇거렸다. 서명원 감독과 담화를 나누던 방수현 선수는 처음 만나는 기자를 편안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웃음 그리고 편안함, 사람 관계에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사진 촬영을 위해 자연스럽게 웃어달라는 요청에 세계적인 스타답게 웃음을 지으며 포즈를 취하는 방수현 선수에게서 나는 모딜리아니를 떠올렸다. 목을 길게 늘이고 눈을 아몬드처럼 그렸던 모딜리아니. 그녀는 알고 있을까, 활짝 웃을 때 까만 눈이 내 가방에 들어있는 모딜리아니 화첩 속 모델을 닮아 있다는 것을. 방수현 선수, 그녀는 이미 은퇴를 했으므로 명백히 말하자면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유관순 누나가 언제까지나 누나이듯이 방수현 선수 또한 영원한 방수현 선수인 것이다.

방수현 선수는 서울 출생으로 도신초등학교 5학년 때 특별활동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부모 또한 취미로만 하기를 바랐다. 큰 키에 달리기를 잘했던 방수현은 당시 배드민턴부 지도교사였던 신명길 교사의 권유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은 아무래도 어리다. ‘어리다’는 의미는 쉽게 들뜨고 그만큼 쉽게 싫증을 낸다는 말과 같다. 하고 싶을 때는 기를 쓰고 하다가도 싫으면 곧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이다. 칭찬은 태양 빛처럼 모든 것들을 자라게 한다는 서양 속담처럼 신명길 교사는 아이들에게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아이들과 꿈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신명길 교사는 배드민턴에 관해 문외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연구하며 꿈나무 발굴에도 힘써 한국배드민턴의 대들보인 라경민과 이현일 선수 등을 키워냈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방수현 선수 또한 신명길 교사에게 인간적 감화를 받았으며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영등포여중과 서울체고, 한국체육대학교와 동대학원을 거쳐 오리리화장품 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오리리 화장품배드민턴팀을 인수한 대교여자배드민턴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0년 가까운 선수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많은 금메달을 땄지만 화려한 우승 뒤에는 남 모르는 눈물이 있었고,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아버지 방일수 씨였다. 배드민턴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한 방수현 선수가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영등포여중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슬그머니 나갔다오시곤 했다.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운동장을 돌고 간단한 체조도 하니 하루가 상쾌하여 좋다고 하셨지만, 식구들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태도에 걱정이 앞섰다. 연예인이라 밤늦게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친 몸을 추스려 새벽 운동을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녀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며칠 후 방수현 선수는 아버지를 따라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한번도 함께 뛰자고 권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그 동안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딸의 체력을 걱정하던 차에 딸이 함께 새벽 운동을 하겠다고 따라나서자 반가워하였다. 배드민턴 선수의 길을 걷고자하는 딸이 남보다 뒤떨어지는 실력과 체력을 어떻게 보강하고,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달리는 새벽 운동은 그녀에게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운동을 시작한 지 일년쯤 지나면서 그녀는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이름을 날렸고, 점차 주목받는 배드민턴 선수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녀의 곁에 늘 지치고 힘든 몸을 마다 않고 딸에게 말없는 스승이 되어 주었던 아버지가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는 87년 제1회 세계주니어배드민턴선수권대회가 첫 국제무대였고, 88년 제2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여자복식에서 2위를 한 뒤, 88년 영국웰시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 단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1989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일반의학에서는 수술을 하거나 운동을 쉬어야 한다며 은퇴를 종용했으나 스포츠의학에서는 심한 상태는 아니라며 보강운동을 하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방수현 선수는 허리에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 심폐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수중 달리기를 통해 건강을 회복해 갔다. 요양을 마친 후 참가한 1991년 말레이시아오픈에서 3위를 차지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1992년 영국오픈에서 2위를, 홍콩오픈에서는 숙적인 인도네시아의 수산티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단식은 스트로크플레이 위주로 진행되는데 일류 선수들은 스텝이나 그립만 보고도 상대가 어떤 샷을 구사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체력이 약했던 그녀는 파워보다는 두뇌 플레이에 능했다. 드롭 샷이 장기인 그녀는 91년부터 96년까지 전영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각종선수권대회 단식 부문에서 우승 또는 2위에 머무르다 1995년 국제 배드민턴연맹이 발표한 세계랭킹 여자단식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96년에 들어서며 기량이 급성장하여 코리아오픈과 전영오픈 단식에서 모두 우승하였고, 뒤이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쳤던 그녀에게는 항상 앞을 가로막아온 수산티에게 설욕한 뒤 얻어낸 금메달이라 더없이 기뻤다. 준결승전에서 수산티를 2-0으로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한 방수현은 송곳같은 드롭 샷을 코트 구석구석에 내리꽂으며 인도네시아의 아우디나에게 2-0으로 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준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의 수지 수산티와 맞붙었는데 95년부터 수산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자신이 있었어요. 수산티가 체력이나 스피드 면에서 많이 떨어진 탓도 있었구요. 한 점 앞서면 한 점 따라오고 한 점 내주면 한 점 따라가고… 이겼을 때 정말 기뻤어요. 결승전은 다음 날 오전 9시에 있었는데 전날 승리에 너무 들뜬 탓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 모르겠어요. 인도네시아의 아우디나 선수에게는 한번도 져본 적이 없어 정신만 차리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력 차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정신력의 승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허리 부상이라는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따낸 방수현 선수는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올림픽사상 여자배드민턴에서 최초로 획득한 금메달은 그녀가 그동안 흘려왔던 땀과 눈물, 그리고 온 국민의 성원이 함께 일궈낸 소중한 것이었다.

“떠날 때를 아는 스타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요”
남편 신현규 씨와 아들 하랑
96애틀랜타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을 딴 뒤 방수현 선수는 그해 10월 재미교포 신경외과 의사인 신헌균 씨(33·마운스사이나이병원 신경외과)와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뉴욕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녀는 현지 초등학교 학생 및 주니어 대표를 지도해 왔다. 1998년 10월 제주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가 대교 서명원 감독의 ‘삼고초려’에 현역 복귀를 결심하고 1999년 3월 귀국한 뒤 대교 팀의 금강산 극기훈련에 참가했다. “오랜만에 코트에 서게 되어 가슴이 설레네요. 후배들을 도와 팀이 우승하는 데 밀알이 되고 싶어요”라며 감회에 젖었다.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방수현 선수를 두고 뭐라고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현역 선수로서의 복귀를 반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방수현 선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떠날 때를 아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1999년 6월 15일 대교 보라매센터에서 은퇴식을 갖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정든 코트를 떠나요. 앞으로 선수로 코트에 서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며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박주봉·방수현의 쌍두마차 체제로 올림픽경기 연속 종합우승을 이룬 90년대 한국배드민턴의 신화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떠날 때를 아는 스타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방수현 선수는 국가대표 간판 선수로서의 부담감을 벗게 되어 시원섭섭하지만 대표팀 복귀를 권유해 온 선배들에게 어려울 때 혼자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타고난 심성이 고운 사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방수현 선수는 선수층이 얇은 한국배드민턴의 현실에 대해 “결국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보니 배드민턴을 계속하려는 선수가 적다고 봐요. 중국의 경우를 보면 1진이 출전하지 않는 대회에는 2, 3진 선수들을 출전시켜 경험을 쌓도록 하거든요.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잘 산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원을 줄인다면 뿌리가 흔들리는 셈인데 많이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에요”라며 걱정을 하면서도 한국배드민턴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잊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방수현 선수 역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져 갔다. 하지만 배드민턴을 이야기할 때마다 방수현은 되살아 날 것이다. 방수현 선수의 화려한 모습만 보았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기 위해 그녀가 흘렸던 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올림픽에 연속 출전한 그녀에게 운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는 미안했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운동했다. 그녀가 대회 때마다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또한 대회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점검하고 다음 대회를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성취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우수한 선수가 되기는 힘든 법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는 그녀가 땄던 금메달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승 상금을 불우한 이웃들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던 그 마음 씀씀이가 고왔기 때문이다.
스타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잠시 잊을 뿐이지 그들의 기억 속에 방수현 선수는 ‘셔틀콕의 천사’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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