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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지도자 출신 제1호 장학사 이승숙 충북 전무이사배드민턴에 대한 열정으로 마침내 장학사 꿈 이루다.
김홍경 기자  |  fenderus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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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7  13: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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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지도자 출신 제1호 장학사 이승숙 충북 전무이사
배드민턴에 대한 열정으로 마침내 장학사 꿈 이루다.

장학사는 장학관의 아래 직급의 교육 공무원으로 현장 교육 실천을 추진하기 위하여 교육목표, 교과과정, 교재연구, 학습지도법, 교원연수, 학교평가 등의 교육에 관한 모든 조건과 영역을 대상으로 하여 지도, 조언하는 일을 맡아 한다.
장학사 시험은 교직에서는 사법고시 합격에 견줄 만큼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모든 일선교사들의 선망 대상일 만큼의 따기 어려운 높은 직책이다.
29년 동안 배드민턴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오직 배드민턴 한 종목에 인생을 걸며 외길을 걸어온 어느 한 여교사가 마침내 많은 교사들의 로망인 장학사가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충청북도배드민턴협회 전무이사인 이승숙.
충주성남초등학교 교사이자 배드민턴팀 감독인 이승숙 전무이사는 2013년 올해 4년여의 각고의 노력 끝에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2014년 장학사 발령을 앞두고 있다.
배드민턴에 대한 열정 하나로 마침내 장학사의 꿈을 이룬 배드민턴 지도자 출신 제1호 장학사 이승숙 전무를 월간 배드민턴이 만나 보았다.


Q. 우선 장학사가 되신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배드민턴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이며,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데,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동은 중학교 때 키가 크다보니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운동을 하면서 배드민턴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전국적으로 동호인들도 그렇고 희소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집에서도 딸 5명 중 막내다 보니 아버지도 한번 해봐라, 요새 여자들도 운동하면 괜찮다 라며 해보라고 해서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충주여중 1학년 때 시작해서 3학년 때 전국소년체전에 나가 3등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주니어대표로 한일국가대항 경기도 나갔는데 3학년 때 슬럼프가 오더니 갑자기 운동하기가 싫어졌어요. 체대나 조선대에서도 제의가 있었지만 운동이 하기 싫어서 졸업을 하고 1년 재수를 하면서 충주여고 애들을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교대에서 배드민턴 선수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때는 예비고사를 봤었는데 220점 커트라인에 180점을 받으면 교대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준다고 해서 1년 동안 재수를 하면서 180점을 넘어 교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교사 발령을 받게 되고, 처음 발령 받은 곳이 강원도 횡성초등학교였어요. 그때부터 배드민턴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속 지도를 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초등학교 교사들 중 특기가 배드민턴인 분들이 없었어요. 또 교대에서도 뽑질 않았죠. 그때 저희 때만 뽑고는 그 다음에 없어졌어요. 그래서 후배들도 없고 유일하게 저 한명만 들어가고 배드민턴이 끊겨 버렸어요. 충북에서도 저 혼자였고, 전국에서도 배드민턴을 교대에서 뽑은 곳이 거의 없었어요.

Q. 교대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충북 청주의 교대입니다. 교대에 가서 공부하기도 엄청 힘들었어요. 완전히 공부만 하는 엘리트들만 가는 곳이다 보니 정말 간신히 졸업을 하고, 교직에 나와 보니 배드민턴을 하는 선생님들이 없으니까 저처럼 특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원하는 곳이 많았어요.
강원도 횡성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이 횡성 사람이었어요. 그 사무국장 이 자신의 고향인 횡성으로 나를 보내게 된 것이죠. 횡성초등학교로 가서 배드민턴을 지도한지 3년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만들었어요.

   
 
Q. 감독으로 가신건가요?

A. 네. 학급을 맡으면서 감독을 맡았고, 코치도 없었어요. 학교 바로 근처에 2칸짜리 방을 얻어서 방 하나만 내가 쓰면서 선수들을 데리고 생활했어요. 그때 그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대단했어요(웃음). 새벽운동하고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 운동하고 또 야간 운동을 하면서 밥도 직접 해서 선수들에게 먹이면서 운동했더니 우승을 한 거예요. 이후에 충북쪽에서 충북에서 키운 선수를 왜 강원도에 가서 있게 하느냐 하면서 특채로 다시 충북으로 가게 되었어요. 이후 결혼을 하면서 충주삼원초등학교로 옮기게 되어 또다시 배드민턴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저는 교직이 29년째인데 29년 동안 오직 배드민턴만 한 것 같아요. 학급담임도 같이 병행하면서 배드민턴의 인생이, 29년을 배드민턴에 모든 것을 걸고 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나름대로 우승도 하고, 점수도 물론 되고 그 대신에 제가 공부 같은 것도 욕심을 냈었는데 승진을 못하는 거예요. 주변에 계신 분들이 너무 안타까워하고, 여러 가지 능력은 되는데 너무 배드민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승진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공부를 좀 해봐라 라고 해서 3년 전부터 공부를 좀 했어요. 장학사 시험이 사실 쉬운 게 아니에요. 교직에서는 장학사 시험을 사시패스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어렵거든요. 왜냐하면 3년 정도면 굉장히 빠른 거고 5수, 6수정도 한다고 해요. 3년째 되는 해에는 떨어지고, 작년엔 너무 힘들어서 포기를 했고, 그러다가 올해 다시 도전을 해서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배드민턴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에요. 겨울방학 같은 경우 한달씩 대전 쪽에 가서 합숙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도에서 봤을 때 나름대로 높이 평가를 한 것 같아요. 애들 지도도 하면서 공부까지 했으니까요. 결국 그런 정신이나 그런 것들이 배드민턴을 지도하면서 열정이 남아있으니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교직 생활을 했고요.

Q. 장학사라는 자리는 열의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A. 장학사도 그렇지만 전무이사도 그래요. 전무이사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전국에 여자 전무이사가 별로 없어요. 제가 되었을 때도 저 하나였는데 제가 할 때도 제가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후배들이 선배님이 그 동안에 배드민턴에 여러 가지를 해왔기 때문에 많이 알고, 또 후배들에게도 제가 다양하게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이 되니까 선배님이 배드민턴 전무 역할을 해달라. 그래서 배드민턴을 오래도록 하다 보니까 그런 기회도 오고, 내가 과연 후배들이나 각 학교 배드민턴 학교에 크게 도움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해요. 올해 3년째 인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우리 충북 선수들의 발전이라던가 아니면 열심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려고 도교육청이나 체육회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위쪽 사람들을 만나고 코치도 데려오고 훈련비도 좀 더 지원받고 이렇게 전무이사 역할을 지금 하고 있어요. 이제 장학사로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이런 부분이 좀 어려워 질 것 같아요. 뭐 우여곡절이라면 배드민턴 29년 역사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하여튼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제가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동안에 제가 살아오면서 저는 열정과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항상 추구하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이전에 김학석 부회장님께서 배드민턴 하는 사람들 중에서 장학사는 제가 1호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잘해야 후배들도 다 잘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보람이 있더군요. 배드민턴 하는 사람 중에서 교수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이런 사람들은 있었지만 장학사가 된 사람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배드민턴 하는 사람 중 거의 윗단계라고 할까. 지금이야 배드민턴이 좀 잘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실업팀 하다 결혼하고 잘 되어야 교사, 더 잘 되면 한두명 정도가 체대교수였거든요. 제가 나름대로 끈을 놓지 않고 노력을 한 보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Q. 지금의 학교 얘기 좀 해주신다면?
A. 장학사가 되서 제가 일하고 싶은 분야는 체육 분야를 하고 싶습니다. 근데 체육 분야에 일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고, 도에서 저를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겠지만 내년에 발령이 날텐데 그냥 일반 교육 학습지원과로 발령이 날지 모르겠지만 저는 꿈이 있다면 장학사가 5년인데 체육 분야로 해서 더 체육 분야를 발전시키는 거예요. 그동안 해왔던 일이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후배 선수들에게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장학사가 되고 싶습니다.

   
 
Q. 오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 장학사로 발령받으시면, 최초의 배드민턴 출신 장학사로서 배드민턴의 발전에 더욱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A. 네. 꼭 그렇게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배드민턴을 하는 후배들도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자기 계발에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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