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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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재성
배지원 기자  |  appless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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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14  14: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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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섬 파푸아뉴기니의 어린아이들이 놀이가 끝난 후, 야자나무 앞에 동그랗게 모여 한명씩 순서대로 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움발라키키(Umbala Kiki).”라고 외친다. 마지막 아이는 야자나무에 다다가 손을 얹고 “움발라키키(Umbala Kiki).” 라 말하고 돌아오면 다함께 웃으면서 헤어진다. 이 말을 ‘나에게 다오(Give it to me).‘라는 뜻으로 놀이를 하면서 생긴 나쁜 감정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외치는 주문과 같은 것이다.
지난겨울, 한국남자복식의 대들보 정재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2년여 선수 생활, 마지막 도전을 앞두고 ‘어깨 회전근 염증’이라는 치명적 부상을 당한 것. 하지만 2012년 봄,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며 ‘움발라키키’ 정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배지원 기자 │사진 김홍경 기자

2012코리아오픈이 끝나고 재활을 시작한 정재성을 만나기 위해 수원으로 향했다. 기자를 맞이하며 “많이 물어봐도 괜찮습니다.” 라는 정재성의 한마디와 함께 길고 긴 인터뷰는 시작됐다. 그동안 정재성의 소식이 궁금했던 독자들을 위해, 월간배드민턴 표 정재성 종합선물을 준비했다.

코리아오픈, 부상투혼에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선수 본인은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일단은 몸이 아팠기에 우승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었다. 훈련양이 부족했고,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라 게임에 크게 기여 할 수  없었다. 코리아오픈 3연패는 아쉽지만 마지막 포커스는 올림픽에 맞춰져있다.

코리아오픈이 끝나고 바로 재활에 들어갔다.
22년 운동하면서 내 생활을 가져 본적도, 또 이렇게 긴 시간 재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해본적도 없다. 이런 상활이 낯설어 처음에는 조바심부터 냈다. 이렇게 바쁜 시기에 두 달여 가까이 재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활센터에서 다른 선수들과 이야기 하면서 조금 달라졌다.  특히 탁구선수 유승민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지금이 시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말에 지금은 배드민턴이 너무 하고 싶지만 일단은 몸을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다닐 거라 예상했는데 삼성전기 숙소에서 다닌다고 해서 의아했다.
집에서 왔다 갔다 하려했는데 이동거리가 부담돼 수원에서 다니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슬슬 저녁에 체육관에 나가 볼을 쳐보려고 한다. 재활해서 80% 저도 낫는다고 하면 나머지는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워야한다. 슬슬 조금씩 무리하지 않게 기본적인 것부터 해보려고 준비한다.

요즘의 일상은 어떻게 되나?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바로 재활센터에 간다. 숙소에서 8시 반에 나가면 9시가 조금 안 돼 도착한다. 9시부터 12시까지, 1시 반부터 6시까지 재활을 한다. 선수촌에서는 1시간 반 2시간 정도 훈련을 하지만 여기는 치료와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처음엔 3, 4일은 빠른 회복을 바라며 열심히 했는데, 반복되는 것이 많아 조금은 지겹기도 하다. 다른 선수들은 3주 만에 느꼈다는데 그걸 1주 만에 느꼈다(웃음). 거기 있는 선수들과 가까워진다면 좋겠지만 내가 원래 친해지기 힘든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말도 못 걸고 나도 잘 못 건다.

   
 
사실 정재성 선수는 뒷모습도 포스가 있어서 말시키기 좀 힘들다.
(웃음)아닌데. 예전에 비해 성격이 정말 많이 변했다. 옛날엔 말도 못하고 여자들하고 눈도 못 마주쳤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삼성에 오면서 누나들과 생활하고, 부인을 만나고 나서 많이 변했다. 오늘이 우리가 처음 만난 지 3819일째 되는 날이다. 아무래도 자주 못 만나니깐 서로 애틋하다.

3819일째 연애하는 기분일 것 같은데.
그렇다. 집에 가면 3일까지는 좋아하는데 그 이상 넘어가면 각자의 패턴이 있기 때문에 부인이 힘들어한다. 아무래도 선수 출신이니깐 집에 있을 때 못해주면 많이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연애할 때와 지금이 똑같다. 부인은 처갓집에서 나는 선수촌에서 머물면서 주말에 만난다. 다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아 부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남편으로 참 많이 미안하다.

태릉선수촌 유부남 3인방(이현일, 정재성, 박성환)이다.
대표팀의 30대는 현일이형과 나뿐이다. 형과는 함께 한 시간도 시간이지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형이 대표팀으로 복귀하지 않았다면 혼자 외로운 시간이었을 텐데 형이 잘 끌어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촌에서 처음 서울에 올라와 새까맣던 나를 데리고 명동에 나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면서 챙겨줬다. 그 당시에 아무것도 몰랐는데 많은 것을 알려줬다. 그때부터 명동을 자주 나가서 골목골목 잘 알고 있다. 연애할 때도 많이 갔고. 남자복식팀 동생들과 함께 놀다 보면 유부남은 빼고~ 장난치는데 사실 결혼 전후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못 느끼는데 그때는 정말 결혼 했구나 확 와 닿는다. 

결혼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결혼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행여나 다투면 신경 쓰이고 경기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이제 내 사람이라는 그 한 가지 만으로도 이렇게 편할 수 없다. 부인도 결혼을 하고 나서 더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다. 결혼 후, 괜찮다고 말해주고 토닥여주는 부인이 있었기에 실패도 다시 돌아보기도 한다. 늘 걱정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부인에게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 결혼이라는 선택에는 후회 없다. 내가 내린 결정에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의 편안함과 여유, 가정의 가장으로! 나중에 2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아이가 기억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아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꼭 금메달을 안겨 드리고 싶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운동을 하면서 4학년 때부터 합숙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많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매일 통화를 했다. 아직도 전화를 걸면 어머니가 받을 것 같아서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어머니의 15년 투병생활동안 아버지가 늘 함께 계셨는데 지금 그렇게 부인을 떠나보낸 후, 혼자 계시는데 자주 연락도 못 드리고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우리막둥이~ 우리막둥이~ 부르면서 많이 자랑하시는데,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나 또 아버지께 더 멋진 아들이 되어 드리고 싶다. 

정재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년 전,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 것이 마지막이 되었기에 그 전에 더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남편과 4형제 뒷바라지 하느라 정작 본인 자신의 몸을 챙기지 못한 어머니께 더 좋은 것을 많이 해드리지 못 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랬기에 정재성의 올림픽 도전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이라는 것에서 더 특별 하다.

선수촌에서의 생활이 궁금하다.
선수들끼리 게임할 때 연습인데도 불구하고 절대 지지 않으려 한다. 그럴때 보면 후배들이 발전하는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생각했다. 본인들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노력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발전을 해 온 시간보다 훨씬 빠른 것이 보인다. 복식선수들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경쟁으로 인해 발전을 할 수 있다. 동생들이 발전을 하는 모습은 보면 진짜 좋은데, 나는 안 잡혔으면 좋겠다(웃음). 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누구나 지기 싫어하겠지만, 안 졌으면 좋겠다. 잡히면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망가질 것 같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지게 돼 있지 않은가. 워낙 빠르게 발전을 하니깐!

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나는 두 번째 올림픽이지만 (고)성현이와 (유)연성이는 첫 올림픽이다. 해줄 말이 정말 많다. 나도 긴장을 하겠지만 그래도 두 번째니깐 그때만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준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동생들이 어려워하고 힘들어 할까봐 많이 걱정이 된다. 내가 막내 때는 선수들이 몇 없어서 상당히 어려웠다. 요즘은 서로 챙겨주고 하니 잘 한다. 나갈 수 있는 대회도 2, 3년에 한번 뿐이었다. 지금은 대회도 많아지고, 열심히 해서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나도 그때 기회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때 힘들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누나들 형들을 지켜보면서 닮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성장을 할 수 있었다.
   
 
20대의 정재성과 30대의 정재성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20대는 강하고 빠른 것으로 겁 없이 덤빌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파워나 스피드가 떨어질 수 있지만 노련함으로 상대방이 나오는 것을 읽는다. 체력적 부담도 덜 하고, 유도를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30대가 되니깐 힘들다고 말했던 형들의 말들이 이해가 간다. 나도 막내 때는 형들의 얘기를 듣고 ‘왜 힘들다고 하지? 관리를 하면 되는 것 아냐?’ 생각했는데 지금이 되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아무리 관리를 해도 힘이 들다. 어른들 말이 틀린 것이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성장도 끝나고, 힘과 스피드를 가졌기에 가꾸기만 하면 되는 나이였다.

대표팀 남자복식의 가장 젊은 피인 김기정-김사랑 조와의 4강전 어땠나.
경기 결과를 떠나서 동생들의 성장에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사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사실 동생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큰 경기를 앞두고는 훈련이 끝나고 몸이 피곤해도 웃으면서 함께 연습을 해줬다. 운동이라는 것이 나혼자 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을 더 깨닫고,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용대가 재성이형은 동생들을 정말 잘 챙긴다고 하던데.
(웃음)동생들이 내 한마디에 긴장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내가 방으로많이 찾아 가는 편이다. 내방으로 오라면 어려워할 것 같아서(웃음). 대표팀 막내인 (강)지욱이는 컴퓨터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게임을 하고 있으면 같이 게임도 하고 구경하면서 얘기도 많이 나눈다. 함께 게임을 하며 어울리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요즘 어린 선수들은 페이스 북을 많이 하는데, 왜 안 하나. 
전혀 관심이 없다. 만약 그런 것에 빠졌다면 운동에 소홀해졌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것이기에 좋은 말, 좋은 사진만 올리지 않는가? 나 정재성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기억되고 싶다.

책을 많이 읽나. 뭔가 꽤 뚫어 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
(웃음)운동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느끼는 감정들이다. 눈치도 늘고, 조금씩 바뀐다.

   
 
원광대를 졸업한 정재성의 모교사랑은 대단하다. 그러다 보니 전국체전에서는 후배들의 경기를 보다 이런 사진까지 찍혔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삼성에 입단을 한 정재성을 1년 후 원광대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복식선수로서의 기본을 채워나갔다. 늘 뒷주머니에 수첩과 볼펜을 넣어가지고 선수들에 대해 메모를 하는 최정 감독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자신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신장이 작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더 강한 어깨와 높은 점프력을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도 그 대학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서 정재성 앞에는 유독 마지막 도전이라는 말이 많다. 이쯤 되니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야기를 안 들어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2008년에는 게임전날까지 컨디션 120% 너무 좋았다. 준비도 잘 됐고, 몸 상태도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잠을 유난히 못 이겼다. 3시인가, 4시였던 게임이 12시로 당겨졌다. ‘몸이 무거운데 조깅을 할까? 잠을 더 잘까? 괜찮을 거야.’ 생각했다. 평소보다 땀을 많이 빼고 게임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점점 마음이 굳어갔다. 스트로크는 정확하게 안가고, 상대방 약한 볼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게 끝나면 군대 가야 하는데.’ 스코어는 아직 3:3이었다. 정말 숨고 싶었다. 경험부족이라는 것과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부담이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 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반 동안 펑펑 울었다. 베이징 올림픽 전, 후에 뭐가 달라졌나 영상을 보니 웃고 있었다. 그전에는 이거 아니면 안 돼! 무조건 해야 해! 성공 밖에 못 봤지만 뼈아픈 실패 후 군대를 가고 부담 없이 편한 표정으로 재미있게 운동을 했다. 좀 허탈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 보기 좋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동안 용대와 코치님들과 넷이서 이뤄낸 것 들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패배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 허탈한 순간도 있었다. 모두가 열심히 했어도 승패가 달라지기에 열심히 노력하고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직후, 큰 경기에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말이 한번씩은 서운하기도 하다. 그런 시선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난 떨지 않았는데. 내 컨디션도 괜찮았는데 상대방의 컨디션이 더 좋고, 또 더 잘 한 걸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2008년 같은 경우,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특히 전영오픈 준결승 말레이시아와 3세트 16: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듀스로 만들어서 결승으로 진출한 것이다. ‘왜 포기하려 했나, 이렇게 이길 수 있는데.’ 격렬한 세레모니로 우승을 만끽했다. 그때의 자신감이 독이 됐던 것 같다. 너무 잘 되다 보니 높은 것만 생각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결승전에 간다고만 생각했다. 마지막 올림픽이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해보려고 한다.

올림픽 직후에 군 입대를 했다. 군대에 가서 며칠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형 한 3일만 참으면 돼!” 선임이 제일 친한 최호진, 강우겸, 정정영, 김인우였다. 정말 제일 좋아하는 동생들이어서 설마설마했다. 진짜 가서 보니 웃지도 않는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진짜 말도 안 나왔다.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그때 잠깐 서운했는데, “형 이건 알고 있어야 해요” 하면서 알게 모르게 챙겨주고 많이 보호해줬다. 둘도 없는 동생들이다.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멀리 떨어져있어도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재활하면서 팀에 있으니깐 동생들하고 어울릴 수 있어서 좋다. 그동안 뒤도 안보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소중한 시간이다. 지나온 날들 뒤돌아보니 웃는 날도 많았고, 그렇지 않았던 적도 다 떠오른다.

얼마전 파트너 이용대가 라면 씨에프를 찍었는데 봤나.
재밌게 봤다. 용대는 스타다. 본인관리를 열심히 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용대는 훈련을 하는데 있어서 본인은 늦추지 않았다. 아픈 순간, 힘든 순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동생으로도 멋있고, 본인의 열정 다 멋있다.

정재성에게 이용대는 어떤 파트너인가.
용대는 나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나는 용대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사람이다. 지금 용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군대에 갔을 때도 나를 기다려 주고, 함께 뛰어준 동생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용대와 파트너가 되고 난 뒤 많은 것이 변했다.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서로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용대와의 시간은 잊지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내 마지막 파트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은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간절함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단점을 보완하고 한다면 이룰 수밖에 없다. 하늘에 맡기겠다.

   
 
정재성은 어떤 선수인가.
사람들에게 늘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키가 작다보니 성공할 수 있을 까 반신반의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부모님을 원망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유용성선수를 보면서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닮고 싶었고, 노력을 많이 했다. 코트에서의 매서운 눈과 함께 게임에 대한 집중은 대단했다. 많이 보고 많이 따라했다. 키가 작은 대신 점프를 높게, 강한 어깨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만약 그때 유용성 선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주위에서 하는 말에 실망하고 속상해하고만 있었을 것 같다.  

2012년 올림픽은 어떨 것 같나.
작년9월부터 지금부터 모든 게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기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그랬기에 2011년 마지막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게임은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게임을 뛰려한다. 함께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후회 없이 도전해보려 한다. 금메달을 딴다 해도, 그렇지 않다고 해도 웃으면서 끝낼 것이다.

금메달을 딴다면 그래도 은퇴할 것인가
결정을 바꿀 마음은 단 1% 도 없다. 동생들을 믿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고, 더 많은 기회를 동생들에게 주고 싶다. 어머니와 약속, 제자신과의 싸움으로 마지막을 도전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을 올림픽에서 실패를 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기회를 얻은 기회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소중하게 마무리를 제대로 할 것이다. 부족한 부분 행복한 것들을 다 기억으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한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도전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정재성. 정재성은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복식팀 주장의 자리를 유연성에게 넘겨주었다. 그동안 자신이 누렸던 국가대표의 영광의 순간들을 후배들도 느끼길 바라기에 결정을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올림픽 후의 정재성의 새로운 도전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 다음 질문은 올림픽이 끝난 후로 미뤄둬야 할 것 같다. 지금 정재성의 눈에는 단 하나, 런던 올림픽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런던에서 날아온 정재성과 이용대의 승전보가 대한민국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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